주거 빈곤과 복지에 대한 성찰

2019.09.18 17:10

사람 조회 수:201

지난 8월 19일 3명의 희생자를 남기고 화마 속에 사라져버린 여인숙은 비인간적인 대한민국 주거실태를 가감 없이 보여준 또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희생자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머물렀던 그곳은 잠시 쉬었다 떠나는 여인숙이 아니라 지친 몸과 마음을 내려놓는 안식처이자 집이었다. 1972년에 지어진 낡은 목조주택인 그 여인숙은 2평 남짓의 피난민 같은 살림살이 사이로 겨우 몸을 눕히기도 여의치 않았던 그런 공간이었다. 햇볕조차 들어오기 힘든 그곳에는 폐지를 모아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도시빈민들의 애환이 박스와 병뚜껑처럼 쌓여 있었던 생존의 현장이었지만, 그 누구도 그들의 삶에 그 어떤 현실적인 도움의 손길도 내밀지 안했던 ‘금기의 공간’이었다.

 그들은 분명 우리 곁에 있었지만 보이지 않았던 유령과 같은 존재였던 것인가? 작년 서울에서 발생한 쪽방과 여관 그리고 고시원 화재사건과도 유사했기에 그래서 그들의 희생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인간적인 슬픔을 넘어 스스로에 대한 자학적 분노가 혼재돼 있다. 누군가가 죽어나가야지만 대책마련에 나서는 행정의 고질적인 병폐와 관행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4조에 명시되어 있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는 결코 현실 세계에서 구현할 수 없는 이상향인지 묻고 싶다. 국민최저선(national minimum)을 위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된 지 2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지만 정작 희생자들에게 과연 그 법과 제도는 무슨 의미가 있었던 것인지 그들을 위한 복지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들의 주검을 관조하듯 바라보는 우리들의 마음이 더 아픈 이유는 이미 2011년에 전주시는 주거복지 지원조례를 제정했고 2016년에는 폐지 줍는 노인들을 위해 일시적으로 생계비를 지원한 바 있고 더 나아가 전주시는 전국 지자체 최초로 2017년 주거복지과를 신설하여 주거복지 업무를 총괄하여 전주시 주거실태조사와 함께 주거복지 기본계획을 마련하는 등 행정의 역할을 충실히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주거복지 사각지대와 열악한 주거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한계로 인한 이번 참사는 행정력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우리의 한계이자 민낯이라 볼 수 있다.

 이번 여인숙 화재 참사는 일차적으로 최저주거기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동시에 주택 이외의 거처, 즉 비주택 거주 가구라는 두 가지 최악의 경우를 다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거와 복지문제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다. 현행 최저주거기준은 1인 가구 14㎡(약 4.2평), 4인 가구는 43㎡(약 13평)이고 주택 이외의 거처란 고시원, 숙박업소의 객실, 판잣집, 비닐하우스, 일터의 일부 공간과 다중이용업소, 지하방, 옥탑방 등 열악한 거주공간을 지칭한다. 2017년 한국도시연구소의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 및 주거빈곤 가구 실태 분석”에 따르면, 전라북도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는 총 49,417가구이며, 보건복지부의 “통계로 보는 사회보장 2018”은 전라북도 내 비주택 거주가구를 14,038가구로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비인간적인 그리고 열악한 주거현실은 전수조사를 통해 주거복지의 정책대상으로서 즉시 개입이 필요한 사안이다.

 주거 빈곤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국민임대주택과 같은 공공주택의 물량을 대폭 확보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주택 개보수를 통한 주거환경 개선과 현실적인 주거비 지원 등이 대안으로 논의될 수 있다. 아울러 ‘2017 전주시 주거실태조사’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주거복지 프로그램이 ‘에너지비용 지원’임을 상기할 때, 에너지 빈곤가구에 대한 대책 또한 함께 논의하는 통합적 지원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본다. 아픈 과거이지만 그 경험을 거울삼아 새로운 주거복지를 위한 전 사회적 차원의 불길이 훨훨 타오르길 기대해 본다.

 최낙관<예원예술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출처 : 전북도민일보(http://www.do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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