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아시아 경제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102510530125845 
1995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토지경제학과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일할 때였다. 당시 런던에서 120㎞ 정도 떨어진 피터버러를 방문했다. 15만 인구의 피터버러는 지역경제가 활성화되어 인구가 증가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보니 주택이 부족했고 주택가격이 오르고 있었다.
 
이에 대응해 피터버러시는 2개 지역에서 택지개발에 나섰다. 이 중 한 곳은 시에서 개발주체를 임시 조직으로 만들어 직접 개발하고, 다른 곳은 민간에 맡겼다. 지구지정부터 재원 마련까지 모두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을 지는 개발 시스템이었다. 또 개발단계에 주민위원회가 참여하고 때로는 주민에게 직접 설명회를 지속적으로 여는 가운데 개발계획의 완성도를 높여가는 과정이 전개됐다.
 
피터버러의 사례는 우리에게 적잖은 시사점을 준다. 정부는 최근 신도시 개발을 잠정적으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1~3기에 이르는 신도시는 주로 서울 외곽 수도권에 건설됐다. 지방에서는 시 외곽 택지개발이 주로 진행됐다. 그러다 보니 수도권은 직주분리로 교통수요가 급증하고, 지방은 도심 공동화가 심각해졌다.
 
그런데 국내 신도시와 택지개발, 임대단지가 모두 중앙정부 중심으로 개발돼 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구지정과 개발계획, 토지수용, 재원 마련 등 모두가 중앙정부의 위임을 받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주도해 온 것이다. 중앙정부가 대단위로 또는 동시다발적으로 도시를 개발하다 보니 보상비가 한꺼번에 많이 풀려 주변 땅값이 오르고, 토지수용에 항의하는 거센 민원에 부딪혔다. 또 지자체와 주민의 의견은 사업의 효율적 집행을 위해 소홀히 여겨지기도 했다. 중앙정부 주도의 정책은 주택문제에 대응하는 지자체의 능력도 높이지 못했다. 으레 주택정책은 중앙의 몫이려니 하고, 때로는 주민들의 주거복지에 이익이 되는 사업조차 앞장서서 반대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안은 무엇일까. 그것은 기본과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주택에 대한 수요예측과 공급계획, 그 방법까지 중앙정부가 아닌 지자체가 상세한 계획을 짜서 추진토록 해야 한다. 지금처럼 중앙정부가 권역별로 주택수요를 예측한 후 대량 공급방식으로 추진하는 방식은 이제 손을 놓아야 한다. 분양주택이든 임대주택이든, 재건축이든 뉴타운이든 주민의 주거문제 해결은 지자체의 몫이라는 인식을 갖춰야 한다. 새로운 택지를 개발할 것이냐, 기존 도심을 재구성할 것이냐를 지자체가 실정에 맞게 결정해야 한다.
 
중앙정부는 제도적 틀을 대략적으로 만들고 상세한 것은 지자체별로 실정에 맞게 조례로 정해 운용하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재건축 발이익(50%)이나 개발부담금(25%)의 부과율도 법률로 상한만 정하고 그 범위 내에서 지자체가 조례로 정하는 식이다.
 
또 개발사업 시행자를 LH로 할 것인지 지역개발공사를 활용할 것인지, 아니면 직접 특수법인을 만들어 추진할 것인지도 지자체가 결정토록 해야 한다. 중앙정부는 세종시와 같은 특별한 프로젝트 추진이 필요한 때에만 LH공사를 활용하거나, 한시적인 특수목적법인을 만들어 추진하다가 사업이 완성되면 해체해야 한다. 임대주택 건설 등 필요한 경우에 보조금 등을 지원하고 필요한 제도적 틀을 만들어 국가 차원에서 지자체를 행정지도해야 한다.
 
그리하면 각 지역에 맞는 주택의 공급량, 공급방식의 결정, 개발이익의 환수, 재원 마련, 주민의 호응 등이 이루어져 조화로운 주택정책이 전개될 것이다. 2018년부터는 인구감소로 주택수요가 정체기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이런 정책 변화를 지금 선택하는 것은 시기적으로도 적절하다.

강팔문 건설근로자공제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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