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잡설경제① 하우스푸어는 정말 가난한가?
2012.10.22 09:35
잡설경제① 하우스푸어는 정말 가난한가?
권태훈
서울에 집이 있는데 가난하다고??
한국 경제위기의 뇌관으로 가계부채 문제가 지적된 것은 오래전 일이다. 그리고 그 가계부채의 뇌관으로 하우스푸어 문제가 본격 거론되면서 하우스푸어는 한국 경제의 현실을 보여주는 아이콘으로 등장했다. 하우스푸어는 그 말 자체가 집 가진 가난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한국사회에서는 일종의 형용모순이다. 서울에 멀쩡한 아파트도 있고, 직장도 멀쩡한데 가난하다. 이게 말이 되는가? 서울에 집만 장만했다 하면 중‘상’층인 한국에서 서울에 집이 있는데 가난하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들은 왜 이렇게 되었는가?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이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지 않을 수 없다.
▲ 가계부채의 뇌관, 하우스푸어 문제가 본격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정말 가난할까? (사진 출처: Google)
일단 하우스푸어는 그 정의조차 분명치 않다. 모 경제연구소에서는 한달 수입의 40% 이상을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에 사용해야 해서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하우스푸어라고 하고 대부분의 언론이 이 기준을 적용하는 듯하다. 그럼 1달 수입이 400만원인데 6억짜리 집에서 살면서 3억원을 대출받아 한 달에 200만원의 이자를 내는 사람은 하우스푸어일까? 아니 이 사람이 가난하기는 한 것일까?
단지 소득에서 부채상환비용의 비율만으로는 하우스푸어가 가난하다고 보기 어렵다. 실제 서울의 아파트 평균가격이 대략 5억 6천만원 정도 되는데 이중 2억을 대출을 받았다고 해도 평균 3억 6천만원의 자산을 보유했다고 볼 수 있다. 재산이 3억 6천만원이 있고, 직장도 대기업이거나 공무원인 분들을 과연 가난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한국인 평균 자산은 2억 8천만원 정도인데, 이중 부동산 자산은 75%정도가 된다. 그럼 한국인이 소유한 평균 부동산 자산의 가치는 높게 잡아도 2억 1천만원 정도다. 앞서 이야기한 하우스푸어는 대출을 제하고도 3억 6천만원의 부동산을 순자산으로 소유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서울의 하우스푸어는 한국 평균보다 상당히 많은 부동산 자산을 보유한 셈이다. 결코 가난하지 않은 것이다.)
직장도 멀쩡한데 가난하다??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이 든다. 왜 직장도 멀쩡하신 분들이 하우스푸어가 되었을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의 하우스푸어는 2006에서 2008년 수도권에서 아파트 가격이 급등할 때 집을 산 분들이다. 가난해서 집을 사신 분들이 아니라 전세 살다가 아파트 값이 뛰니까 막차라도 탄다는 심정으로 집을 산 30, 40대가 하우스푸어의 대부분이다. 좀 심한 말일 수는 있겠지만 부동산 투기 열풍에 막차를 탄 사람들이 하우스푸어인 것이다.
▲ 주택 가격변화 추이(2006년 1월 주택 가격을 100으로 환산)
이 과정을 정치라는 프리즘을 통해 보면 더욱 기가 막힌다. 하우스푸어 중 대부분이 ‘386세대’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어느 세대보다 민주와 평등을 열망하던 세대였다. 그런데 이들이 탄탄한 직장에 취직을 하고 결혼하고 애도 낳고 돈도 벌면서 ‘남에게 뒤지지 않는 수준’에서 생활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고, 이 욕망을 채우기 위해 부동산 투기에 은근히 동참하게 된 것이다.
이들의 부동산 투기를 조장한 것은 그 소위 ‘좌파 신자유주의 정권’이라는 노무현 정권이었다. 노무현 정권은 입만 열면 부동산 투기를 잡아야 한다고 했지만 정권 말기로 갈수록 이는 말뿐, 은근히 부동산 열풍에 기대어 정권의 경제적 성과를 부풀리고 싶어 했다. 이렇게 기성세대화한 386과 노무현 정권의 수구정권과 다를 바 없는 부동산 정책이 가져온 결과가 하우스푸어의 탄생 배경이다.
그런데 이렇게 탄생한 하우스푸어의 성장은 호러물에 가깝다. 하우스푸어는 2007년 대선에 자신을 낳은 부모인 노무현 정권을 배신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노무현의 계승자인 정동영이 정권을 잡으면 혹시나 아파트 가격이 떨어질까 불안하지만, 이명박이 되면 수구정권이 항상 그랬듯이 부동산 경기를 부양해 투기열풍을 이어갈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이 젊었을 때 지지했던 민주주의를 버리고 성장고 투기의 광풍에 은글슬쩍 편승했다. 그 정치적 결과는 민주당에서 한나라당으로 정권을 갈아타는 것이었고, 그게 이명박의 ‘압도적’ 승리의 비밀이었다면 이는 너무 억측일까?
그랬던 하우스푸어가 보통 5년인 거치 기간이 끝나 원금상환 압박에 시달리면서 이게 가계부채의 뇌관이 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하우스푸어 사태다.
▲ 2011년 말 기준 주택담보대출 만기도래 거치기간 종료 규모. 2007년 5년거치 일시상환으로 주택담대출이 급증했고 그 결과 2012년에 주택담보대출 문제가 심각해 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단위: 조원)
당사자인 정부, 은행, 하우스푸어 3자가 책임져야
앞에서 보시다시피 하우스푸어 사태의 관련자는 세 개다. 정부. 하우스푸어 당사자. 금융기관. 정부는 한국 부동산 시장에 거품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에 편승해 경제적 치적으로 삼고자 했다. 노무현 정부도 이명박 정부도 이 점에서는 다르지 않았다. 은행은 저금리 시대에 고금리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짭잘한 예대마진을 올리는데 열중했다.
더구나 대부분의 주택담보대출 신청자들이 직장이 확실해 돈 떼일 염려가 거의 없었으니 그야말로 땅짚고 헤엄치기였다. 하우스푸어 당사자들은 여기에 편승해 한 몫 벌어보려고 소득수준에 맞지 않는 대출을 감수하고 아파트를 구매했다. 아파드 값이 오를 때는 모두가 좋았다. 그러나 결국 버블이 터졌고 먼저 하우스푸어가 대출금 상환 압박에 시달리고, 은행은 대출기간 연장을 거부하며 채권회수에 나서고 이러면서 이제는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는 것이다.
하우스푸어가 소득에 맞지 않는 집을 사게 된 것은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 정책의 영향이 크다. 이점에서 정부의 책임이 있다. 금융기관은 무분별하게 대출마진 챙기기에만 급급했으므로 부실화의 책임을 함께 져야 한다. 하우스푸어 당사자 또한 고위험의 투기에 돈을 투자한 것이므로 일정정도의 리스크를 감내해야 한다. 도박판에 들어갔으면 돈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정부의 돈만 풀어서 해결하자는 것은 국민 세금으로 금융기관과 하우스푸어 당사자들의 탐욕의 후과를 보상해주자는 논리밖에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 국민의 대부분은 집도 없는 사람들이다.
중요한 것은 ‘하우스리스푸어(houseless poor)'
앞서 이야기했듯이 하우스푸어는 실은 대부분 가난하지 않다. 그리고 가난이 상대적 개념이라고 할 때, 우리나라에는 집도 절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다. 이들은 집값은 떨어지는데 반대로 치솟는 전세와 월세에 더욱 고통을 받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언론들은 너도나도 하우스푸어 운운하며 금융권과 상대적으로 안정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계층의 이해를 방어하기에 급급하다. 그러면서도 정작 집이 없는, 그래서 대출을 얻고 싶어도 얻을 수가 없는 ‘하우스리스푸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대선주자들도 언론의 호들갑에 너도나도 하우스푸어 대책을 내놓지만 정작 국민 대다수인 하우스리스푸어 대책은 내놓지 않는다.
훨씬 가난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내버려두고 그래도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가난하다며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고 정부는 가난한 사람에게 걷은 세금을 먹고살만한 사람들에게 쏟아 붓는다. 이건 아니지 않는가? 하우스리스푸어 대책이 없는 하우스푸어 대책, 이건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박근혜가 그런다면 이해가 간다. 그러나 보편복지 운운하는 문재인과 안철수가 그러는 것은 무식하거나 복지를 피상적으로만 접근하기 때문일 것이다. 당연히 진보정당은 하우스푸어 보다는 하우스리스푸어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그들이야 말로 이 부동산 투기 왕국 대한민국에서 진정 배제된 자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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